*** 이 글에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깔끔한 하루로 마무리 하고 싶으시면, 이 글을 닫아주십쇼.
**** 내가 왜 SW로 전향 했는지, 왜 그만 둿는지 종종 잊을 때가 있어서, 그럴때마다 보려고 쓴 글입니다. 문장에 두서가 없고, 뭔가 생갹된거 같을 수 있는데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트캠프 드가기 전
대학교 4학년을 졸업하면서, 전자공학과를 졸업하면서 "나는 회로설계 엔지니어가 되어야지!" 라는 생각으로 차량관련 프로젝트, 70년 전의 닉시관을 이용한 시계 등등 직접 회로를 설계하고, PCB를 설계하고 발주하면서 꿈에대한 열정을 차곡차곡 쌓아갔었다.
방산업체에서 회로관련 아르바이트도 하고.. 하드웨어 관련 지식도 쌓으면서, 학교 내에서 졸업작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타과 학생들의 프로젝트들을 자문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막상 사회에 나가보니까 한없이 조잡한 "나"였다.
중소기업 면접 가면 내가 한 결과물을 보고 실무자들의 입고리가 귀에 걸리는게 보이는데, 문제는 중견 이상의 기업에 가니까 시큰둥 하던거다.
이게 서류탈락은 예사고, 면접에 가니까 나만 신입이고, 죄다 경력 3~5년 있는 사람들이 경쟁자로 들어왔다.
아니, 신입 면접 보는데 왜 옆자리에 5년, 심지어 박사학위 있는 사람이 있는가?
계속된 면접을 보다가 결국 "팔랑귀씨는 다른 지원자 들에 비해 스펙이 딸린다는 생각이 안드세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니~ 이 쒸~입뻘놈아 그러면 뽑질 말든지 쒸빨!!!"
그때 당시 그 질문은 받고 "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류과정에서 저의 정량적인 역량과 정성적인 역량 모두 고려해 주셧기 때문에 저에게 면접 기회를 주신것 같습니다. 저는 ~~"라고 이것저것 부연 설명을 늘어 놓았었다.
(오른쪽에 박사학위 소지자, 왼쪽에는 한전 kdn에서 3년 근무 하신 분이 있었다. 스펙으로는 못이긴다)
뭔가 대답은 좋았는지, 면접관 3명중 2명은 고개를 끄덕이면 맞는 말이라는 식의 반응이었는데 떨어졋다.
사실, 이 면접은 내가 중견 자동차 관련 회사에서 탈출하려고 봣던 면접인데, 가장 기억에 남아서 썻다.
이후, 내가 느낀 것은, "적어도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신입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구나, 경력을 쌓아야 겠다." 였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이슈가 터졋는데, 일처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내 이름으로 말이다.
그때 정말 화가 났다, "원래 사회생활, 회사생활 다 이런거야" 라는 말을 이때 계속 들었다.
이후 이 이슈는 수습하는데 약 3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나는 이 3개월 동안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고개 숙이며 다녀야 했다.
내가 4년동안 공부하고, 이 분야에 오려고 열정을 쏟은 결과가 이거라니, 화가 났다.
그런데, 화를 낼 대상이 없었다. 나는 진짜 "원래 사회생활, 회사생활 다 이런거야" 라는 말을 믿었기 때문에, 이게, 이 상황이 내 탓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객사에서 욕을 처먹어도 입닫고 죄송하다 했다.)
갈길 잃은 화는 거의 6개월동안 내 뇌 안에서 머물었다. 그때 숨쉬기 어려워졌었다.
이후로는 진짜 미친듯이 이력서를 넣었다, 뿌렸다, 거의 대북전단 삐라처럼, 갈곳 잃은 이력서들이 어느 인사팀에 기어들어갔다.
그러다 결국, 대기업 계열사의 신생 사업부에 들어가게 됫는데, 이게 또 문제였다.
연봉은 전보다 오르긴 했는데, 나는 여기서 엔지니어가 아니였다.
경리였다.
"그래도, 지금 좀 핫한 분야의 회로를 만들 수 있고, 배울 것도 많고(내 생각에), 회사가 성장중이고, 집하고도 가까웟으니 버티면 된다! " 라고 생각했다.
이건 내 착각이었다.
나는 하드웨어 팀의 엔지니어로 입사한것인데, 또 다시 방치 아닌 방치가 되고 있었고, 타 부서의 잡무도 나에게 던지려고 하는시도들이 많았다.
"업무지시는 파트장님을 통해서 전달해 주세요, 제가 신입인데, 판단 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야, 해봣자 영수증, 구매품의같은거 올리는데 그냥 니가 해줘, 뭔 부서를 나누고 있어. 어차피 니가 하게 될 텐데 "
이제 다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설상 가상으로 회사에서 이슈가 또 터졋다.
이번에는, 다행히도(당연히도) 내 이름으로 올라가진 않았다.
하지만 이 이슈를 리워크 하러 이전 회사에서 지겹게 다닌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 들락거려야 했다.
(이슈를 수습하려고 직접 가서 리워크를 했었다.)
이전회사에서 처음 남양 연구소 갔을때 연구소 안에 소방서도 있고, 폭포도 있고, 테마파크인줄 알았다.
짜증섞인 담당자의 말을 받아주고, 대시보드 밑에 머리를 쳐넣으면서, 스패너를 돌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이직한 회사에서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장착부위가 시트 밑으로, 스패너에서 토크렌치로 변한 것 빼고 말이다.
(규정토크가 50Nm 이라는데, 50*9.8 = 490kg, 너무 큰데? 이게 맞나? 여튼 손목 찢어지는줄 )
숱하게 리워크를 다니느라 오른쪽 팔 인대에 염증 진단을 받을 무렵, 작업 도중에 어떤 현대 담당자가 말했다.
"작년에 오신 분 아니에요?"
"예?"
"아 그분은 00부분이구나 아, 아닙니다."
"허미,,, 이새끼 기억력 뭐야"
00부분은 내가 퇴사한 회사에서 내가 고치고 다녓던 부분이었다.
"기억력 보소, 현대에서 일하려면 저정도 되는건가? 그래서 내가 못갔구나!"
이와 동시에 그토록 탈출하고 싶었던 회사에서 나와서 한다는게 또 똑같은 일이구나 하는것을 깨닫았다.
이 사실이 너무 창피했다.
나는 여기서 차 뜯는 경리였다. 붕붕 자동차, 시제품 차, 그 비싼 차를 뜯어서 결함품을 교체하고, 사무실에 가서 구매요청서와 영수증을 처리하는 경리
경리로 치면 차고 넘치는 연봉을 받고 있었는데, 나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다. 일종의 욕심일 수 있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다.
정확히는 또 탈출을 결심했다.
이번에는 실패한 탈출을 하지 않으리라, 취업한 친구들을 모두 만나고 다녓다.
나처럼, 제조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절대 우리 회사, 업계 오지 마"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IT쪽 친구들은 "6개월, 1년만 제대로 준비해서 와 , 진짜 다르다" 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제조업에 다니는 친구들의 사유, 대답은 사실 다 달랏지만, 결론은 "오지마" 였다.
그런데, IT 다니는 놈들은 대답이 뭐 국가에서 메뉴얼을 뿌려줫나 싶을 정도로 똑같았다.
"너라면 준비해서 오면 정말 좋은 곳 갈거야"
이것들이 단체로 짜고 치나, 왜 다 같은 말을 해
결정적으로, 회사에서 나에게 퇴사할 용기를 주신 책임님도
"하드웨어가 맞는지, 안맞는지는 몰라서 다시 하드웨어로 입사했다고? 그걸 보고? 세상에 난 너같이 고지식한놈은 처음본다."
"너 왜 전자공학 했냐."
"취업 잘할라고요."
"그러면 IT를 가야지 왜"
이 책임님은 굉장히 좋은 분이셧다. 굉장히 직설적이라서, 이분한테 혼난적이 있는데, 회사에서 이런거로 혼날수도 있구나 싶으면서도 혼내는 내용이 팩트라서 입닫고 네 네 죄송합니다 만 했었다.
이분은 싫은 일을 버티면서 하는 고통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여기 있는 아무것도 모르는 27살, 하도 븅신같아서 같은 직무로 2번이나 입사한 놈한테 닥치게 하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분의 염려는 현실이 되긴 했었다. 내가 정신적으로 안좋아 질 때 쯤, 그분이 내 눈이 맛이 갓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제정신으로 보이진 않았나보다. 그렇게 병원에 가고, 진단을 받고, 결심을 했다.
그렇게 2번째 회사도 나왓다.
사실, 나오기 직전에 처우가 개선되어서, 연봉도 1000가까히 오르고(이걸?) 스톡옵션도 말이 나왓는데 이미 정나미가 떨어졌었다.
여튼, 나오고 백수가 됫다.
백수가 되니, 해야할 것들이 명확했다.
IT직군으로 진로를 찾고, 그에 맞는 공부를 해서, 원하는 기업을 추려내고, 그 기업에 도전한다.
그래서 부스트캠프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코드스테이츠 부스트 캠프에 들어가고
코드스테이츠 부스트 캠프를 지원한 이유는 단순했다.
- 바로 TI 취업하기에는 실력이 없고
- 대기업 주관 교육기관에 지원하였지만 떨어졋다.
- 적어도, 독학보다는 나아보인다, 현직 친구들이 스프링 부트 하는 부스트 캠프 가라고 하더라
- 정신적으로, 출퇴근하듯이 학원 다니기는 힘들다.- 코드스테이츠는 전면 비대면
다행히도, 부스트 캠프에 들어가기 전에 사실 백준 단계별 풀어보기를 진행하면서 JAVA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찌저찌 따라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겻다.
"아니, 잠깐 내가 따라 갈 수 있으면 안되는거 아닌가? 남들은 4년치를 우리는 압축해서 배운다는데, 이겨 완정 설렁 배우는거 아니야?'
하는 의심이 생겼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의심은 빨리 사라졋다.
공부하다보니, 학부과정에서 배운것들은 정말 기초, 그 이하였다.
전자공학에서 프로그램을 배울때 for, switch 문까지 배우면 끝이었다. 나머지도 뭐 그냥 그런게 존재 합니다 이런식 이었다.
생각보다 공부할 양도 많고, 그리고 내가 공부 하는거에 따라 상한선이 없는걸 깨닫았다.
코드스테이츠에 들어가서 HTML, CSS로 간단히 홈페이지 메인화면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리눅스 사용에 대해서도 짤막하게 배우고,
Git, JAVA 문법에서 객체로 뻗어가면서 심화과정도 배웟다.
틈틈히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내가 모르는 것, 배운 척 한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공부하고, 이해가 안되면 이해를 하고서야 글을 썻다.
(그래서 더 힘들게 느낀거 같다.)
또한 페어프로그래밍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매우 다양했고, 모두 좋은사람들과 함께 공부 할 수 있어 좋았다.
서로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공부해서 알려주기도 하면서, "적어도 뒤떨어지고 있지는 않구나, 이 사람들과 같이 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부트캠프를 하고 한달이 지나간다.
다행히도 후회는 들지 않는다. 적어도 맞는 방향으로 노를 젓고 있는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얹혀서, 편하게 가는건 또 아니라서 마냥 편치는 않다.
(실제로 코드스테이츠 첫 강의에 부트캠프는 버스타는거 아니라고 뚝배기 깨고 시작한다.)
그래도, 중간에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멘탈 관리는 어찌 하고 있나?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보충제 먹고 헬스장에 간다.
헬스장 가서 뇌를 비우고 고중량으로 운동을 끝내고 돌아온다.
집 오면 8시 쯤 되는데, 집와서 그래놀라류 시리얼을 두유에 타먹고, 슬슬 9시 모닝 세션을 들을 준비를 한다.
세션이 시작하면, 다이소에서 5천원 주고 산 수동 그라인더에 커피콩을 넣고 손으로 돌리면서 세션을 듣는다.
세션이 끝나면 갈린 콩을 모카포트에 넣고 커피를 우리고 깔깔대면서 우유든, 물이든 하는것에 커피를 넣고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한다.
공부를 한다.
공부를 한다.
밥을 먹는다.
공부를 한다.
저녁먹고 블로그를 쓴다.
딱 이정도로 생활을 하고 있다.
종종, 오른손에 만성으로 변한 염증 때문에 블로그를 한참 쓰면 손이 아플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와신상담이라고, 악에 받쳐서 글을 꼭 마무리 하려고 한다.
하루에 하나씩 깃허브 커밋하고.... 다른 교육기관에서 진행하는 코딩 알고리즘 문제도 풀고..
주말에는 거의 집에서 보내는데, 블로그 글을 수정하거나, 개념을 나눠서 재업로드 하거나, 이전에 시도하다가 못 풀엇던 코딩 알고리즘 문제를 다시 풀어보기도 한다.
회사 다닐때는 일 - 집 -일 - 집 이엇는데
이제는 집 - 헬스장 - 집 - 헬스장 만 다녀서 점점 뭔가 굳어가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면 헬스장 갔을때 중량을 올린다 ㅋㅋ
뭔가 썩는 느낌이 들때 다행히도 종종 대학교 동기한테서 전화가 와서 기쁘다.
자동차 관련 화사를 다니는 친구인데, 종종 하드웨어에 관한 자문으로 전화를 한다.
그러면, 협력사가 가라를 치는건지,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있고, 해결 방법은 뭔지 알려주고 한동안 이 주제로 통화를 하고 나면
"그래도 내가 영 썩은 사람은 아니구나" 라고 느낀다.
사실, 이 친구의 회사에 합격 했었는데(이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처우도 좋았다.), 이제는 마음을 굳게 먹고 가지 않았다.
종종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이런 기회도 보낸게 후회 없도록 열심히 해야한다.
솔직히, 지금 내가 잘하고 있진 않다.
그래도 일단 한다는게 중요한 것 같다.
8월에 코드스테이츠 개강 전, 부산에 여행을 다녀왓다.
부산에서 기차탈때, 버스탈때 생각을 많이 해봣는데 결론은 이거였다.
"내가 실패한게 아니다, 상황이, 그놈들이 나쁜거다 "
이제 27살도 몇개월 남지 않았다.
27살, 뭐든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고 말하지만, 여기서 더 늦으면 이제 좀 늦었다고 말하는 나이기도 하다.
나는, 적어도, 이 시간동안 뭐라도 얻어야 한다.
개발실력이든, 앞으로 뭘하고 살지 궁리하든
내가 가질 수 있는걸 모조리 욕심내면서 가지려고 노력하겠다.
앞으로 잘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해도 조각이 크다."
위의 글은 1달, 2달, 혹은 부스트 캠프가 끝난 후 보면서 자신의 생활이 어떤식으로 달라졋는지, 미리 기록 해놔서, 미래의 내가 비교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썻다.
일단 위의 내 생활을 보면서, 주말에 뭘 더 다른걸 해야겠다.
예전에 했던 홈베이킹을 다시 시작하거나
커피를 배우던가
모임에 들어가던가
다음에 회고록을 쓸때는 위의 생활보다 더 재밌게, 더 나은 정신으로 쓰길 바란다.
2022년 9월 19일 개백수 팔랑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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